
추천사 - 오은
오은 시인과의 첫 만남은 서울의 한 카페였다. 갓 스무살. 등단 1년차였던 천재 시인 오은은 앳된 소년이었고 나는 약간 개구지고 어리버리한 형이었다. 그렇게 이어지듯 끊기듯 했던 우리 인연은 그 후 몇 번의 만남을 끝으로 한참 동안 공백기였다가 10년이 훌쩍 넘게 지난 후 지금에사 급작스럽게 연락을 했다. 아직 011이었던 번호는 바뀌었을 것 같아 페이스북으로 그를 찾았더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페북 만세!

이런저런 사연을 담아 장문의 메세지를 보냈고 과연 확인을 언제 할까 싶었는데 다행히 바로 연락이 왔다.

흔쾌히 허락해준 시인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추천사]
이재가 『DEJA VU ISLAND』를 통해 선보이는 사진들은 시종 법석인다. 언제든 어디로든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들, 가만있는 것처럼 보여도 온몸으로 꼬무락거리는 것들, 가만히 그러나 뭉근하게 끓어오르는 것들로 가득하다. 기억이 있으므로, 기억할 것이 있으므로 붙박여 있어도 지금인 것들이다. 이재의 사진들은 ‘이제’의 사진들이 된다.
이재의 사진 속에서는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그리고 정물도 꿈을 꾼다. 언제에 속하든, 어디에 머무르든, 어떻게 놓여 있든, 무엇을 갈구하든, 꿈을 꾸는 한 이동 중이다. 그 꿈은 당장 내일 기억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길을 걷다 낙엽 더미에서 우연히 연노란 은행잎을 발견했을 때, 오래 전에 보았던 방패연이 하늘을 유유히 떠다니는 풍경을 마주했을 때, 분명 벤치에 두 명이 앉아 있었는데 잠시 딴생각을 했더니 한 명이 어디론가 사라졌을 때,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어떤 것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낀다. 보이지 않아도 어떤 것이 점점 분명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을 느낀다. 그것을 이재의 데자뷔(déjà vu)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한 명이 사라졌지만 다른 한 명은 여전히 앉아 있을 때, 우리는 질문을 던지며 응시하게 된다. 앉아 있는 자의 뒷모습은 기다리는 자세인가, 홀가분한 표정인가. 어떤 기다림은 왜 영영 끝나지 않는 건가. 기다렸다가 만나고 만났다가도 헤어지는 것을 우리는 왜 반복하는가. 일상은 왜 비슷한 무늬로 흘러가는가. 왜 단 한 번도 같은 무늬를 보여주지는 않는 걸까. 벤치는 대체 언제 혼자가 되는가. 물은 왜 고여 있을 때나 흘러갈 때나 외로워 보이는 걸까.
데자뷔 속에서 질문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이어진다. 민들레 홀씨는 왜 완전한 구조 속에 불안을 한가득 담아두었을까. 평온한 날에서조차 하얗게 질려버리고 마는 순간은 왜 기어이 찾아드는 걸까. 비가 오지 않아도 우산을 쓰는 사람은 비가 그쳤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곧 비가 내릴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걸까. 왜 돌아오기 위해 우리는 떠나는 걸까.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왜 또 한 번 떠날 결심을 하는 걸까.
『DEJA VU ISLAND』에서 인생은 시원하게 펼쳐지는 것이었다가 겁을 먹고 둘둘 말리는 것이었다가 어느 순간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나는 것이 된다. 눈에 담았던 풍경과 입에 담았던 말, 귀에 담았던 소리와 머리에 담았던 기억, 그리고 마음에 담았던 희미한 그리움이 페이지마다 양감을 얻는다. 이재의 렌즈를 거치면 낯선 일상은 친숙함을 얻는다. 그 친숙함에 힘입어 비로소 내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발견은 찾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찾아내겠다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사람은 군중이 되고 사물은 부표가 되고 만다. 이재는 법석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몸이 가만히 있을 때조차 마음만은 늘 누군가와 무언가를 향해 기울어졌다. 이재가 담은 순간이 우리의 심신에 살아 움직이는 힘으로 스며드는 이유다.

오 은
1982년 전북 정읍 출생.
2002 현대시 등단
2014 제15회 박인환문학상, 2018 제1회 구상시문학상, 2019 제20회 현대시작품상 수상.
시집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 <왼손은 마음이 아파>, <나는 이름이 있었다>
총서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
색그림책 <너랑 나랑 노랑>
공저 <반려식물>, <휴일>, <너의 시 나의 책>, <어떤 날 8>, <현대문학 판 시리즈 시인선 Vol.2>,
<나는 천천히 울기 시작했다>, <의자를 신고 달리는>, <지정석>
처음 만났던 날 서먹한 분위기에서도 시종일관 웃음과 수다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 기억난다. 시를 쓰듯 수다를 떨고 수다를 떨듯 시를 쓰는 그는 언어 자체를 좋아하고 즐기는 기발한 소년이었다. 우리는 함께 심수철 시인의 집에 가서 소갈비를 얻어 먹었고, 김종호 소설가와 이혜진 시인과 함께 서울의 호프집에서 수다를 떨었다. 그를 만나지 못했던 오랜 시간 동안 각자에게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 터. 그는 언젠가 큰 사고를 당했다고 했고, 나는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언제고 그를 다시 만나 못다한 얘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