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III.
Chapter III은 76장의 컬러사진들로 구성되었다. 애초에 내 주력이 흑백인데다 흑백의 분위기를 더 좋아하는 나였기에 사진집을 모두 흑백으로 구성하려고 하였으나, 찍어 온 세월이 있는지라 컬러 사진도 제법 많았고, 사진집의 흐름을 도와줄 수 있고 또한 재미를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챕터 III을 구상했다. 이 역시 계절의 흐름과 시간의 흐름을 주제에 맞춰 배치하였고 특히 기억하고 싶은 일상의 장면들로 채워나갔다.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를 반복하다보니 가까운 일상의 장면들도 어느 순간 낯설게 다가왔다. 그야말로 데자뷔가 아닌 자메뷰(Jamais Vu, 미시감)에 시달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이러한 나 자신의 생소한 모습 또한 데자뷔 아일랜드 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넣을까 말까 고민했던 챕터 III가 스스로 그 가치를 발하기 시작했다.

슬라이드필름인 벨비아 현상을 맡겼는데, 사진관에서 네가티브 현상액으로 돌려버렸다. 본의 아니게 크로스현상이 되어버린 것. 망했다(?)고 생각한 사진관에선 부랴부랴 연락이 와서 사과의 뜻을 전했고 나는 '어쩔 수 없죠.'라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받아든 결과물이 완전 마음에 들어버렸다.

2008년 10월 어느 날, 나는 무엇 때문인지 수원 시내를 헤매듯 배회하고 있었고, 어느 도로변 작은 갤러리에서 사진 전시를 하고 있었다. 날 위해 수원에서 이런 것까지 준비했구나 생각하며 다가가는데 안쪽에서 한 여성분이 작품을 감상하고 있었고, 커다란 유리창 바깥에서 또 한 여성분이 안을 보고 있었다. 두 분의 뒷모습이 닮아서 재밌다고 생각했다. 사진 찍는 내 뒷모습도 누군가 보고 있었을까. 이때의 심상이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사진의 단상을 적어놓은 일기를 발견했다.
"비유와 상징은 인간을 좀 더 무책임하게 만들었을 뿐." 2008-10-09


회사 아래쪽 공터에 놓인 낡은 컨테이너 박스에 새로운 가족이 들어섰다. 아깽이 네 마리가 꼬물거리길래 건빵을 물에 개어 줬더니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며칠 동안 몰래 소시지나 우유 등을 갖다 주며 새끼고양이들이 잘 먹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지친 회사생활에 활력소가 되었다. 젖을 물리던 어미와 눈이 마주친 후 한동안 어미는 나를 잔뜩 경계했다. 아이들의 덩치가 제법 커졌을 때 가족은 어디론가 이사를 갔다.

무척이나 흐렸던 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의성읍 북원사거리다. 흐린 날씨와 회전교차로를 지나는 노란 트럭이 마음에 들어왔다. 사진집에 노란 은행잎과 함께 배치하며 흡족해했다는 후문.

2013년 1월. 친구와 함께 영양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녀석은 눈 구경을 하자며 안동의 임하 초등학교로 나를 이끌었다. 학교는 제법 오르막에 있었다. 눈 구경을 무슨 초등학교로 가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올라간 그곳엔 새로운 설국이 펼쳐지고 있었다. 넓은 운동장과 멀리 펼쳐진 산자락을 보던 친구는 흥에 겨웠는지 계단을 내려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고, 나는 눈과 춤추는 친구의 모습을 담고는 곧장 따라 달려 내려갔다.
이 사진은 코닥컬러로 찍었는데 흑백사진으로 사용할 요량이었으나 흑백으로 변환하지 않아도 모노크롬의 느낌이 들어 그냥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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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낙엽이 무수한 집앞의 산책길. 띄엄띄엄 사람들이 운동장을 산책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풍경과 사람과 낙엽을 찍었다. 해 지는 오후였고 적당한 역광이 예쁜 실루엣을 만들어주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레미 드 구르몽

2009년 10월 한라산 1100m 고지.
디지털 사진이다. 이때 니콘 D50에 니코르 18-70 렌즈가 물려 있었다. 왜 필름으로 찍지 않았을까 생각해봤는데 흑백필름이 장전되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아무튼 제대로 가을이었다. 1950m 중에서 1100m를 차로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1100고지 휴게소 계단에 서서 눈앞의 풍경에 감탄하며 한라산의 가을을 잔뜩 만끽하는데 새 한 마리가 유유히 허공을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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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12장의 불꽃놀이 사진을 따로 넣었으나 자르고 이어 붙여 한 장으로 만들어버렸더니 근사한 이미지가 되었다. 2006년 일본 나고야 인근의 한 소도시에서 펼쳐진 불꽃놀이는 두 시간 동안 계속되었고, 이런 불꽃축제가 처음이었던 나는 넋을 잃고 보았다. 그 후 국내의 여러 불꽃축제가 있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타이밍이 맞지 않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올해 혹은 내년엔 갈 수 있을까. 하고 싶다라고 끊임없이 말하지만 영원히 하지 못하는 것들이 종종 있는 법.

대구의 한 깊고 어두운 술집의 테이블에 놓여진 가면촛대. 문 여는 날이 예고없이 들쭉날쭉했고 항상 재즈가 흐 르고 있었고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다들 이곳을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다. 단골이었던 나는 음악 CD 한 장을 만들어서 사장님께 드렸다. 촛대가 이렇게 멋져도 되는 건가. 사장님은 월매출이 월세를 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고 하였고, 몇 년 전에 문을 닫았다. 추억이 너무 아까워서 이름을 말하지 못할 내겐 주술 같은 사진.

챕터 III의 마지막 사진은 폰으로 찍은 저화질의 아주 개인적인 사진이다.
달, 가로등, 형광등.
언젠가 g는 이 사진을 보면 아찔한 확률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는 어떤 확률로 예까지 와버린 걸까.
인생의 다음 장을 펼치기 위해, 이 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