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IV.
Chapter IV는 114장의 흑백사진이다. 챕터 I의 연장에서, 뼈대에 살을 붙이듯 DEJA VU ISLAND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과 동시에 챕터 II, 챕터 III의 빈틈을 메워주는 역할을 하고자 하였다. 이를테면 본문인 셈이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이 장이 세 번째가 아닌 네 번째에 위치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나에게 소외받던 컬러사진에 대한 애틋함 때문에 챕터 III이 먼저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큰 이유는 없다. 어쨌든 이 장이 세 번째에 들어가는 게 전체적인 모양새가 좋았을 뻔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어떻게 보여지든 나의 이야기, 데자뷔 아일랜드의 이야기를 하는 데 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님 말고. 인생은 아님 말고. 아님 말고라는 말이 계속 걸리적거려 고치러 왔다가도 그냥 가버리는 것. 인생은 나그네길이니까. 인생은 낯섦과 익숙함의 반복이고, 인생은 미완성이고, 인생은 인생은 흔한 사업. 어이하여 예까지 와버린 질기디질긴 사업.

챕터 IV의 첫 장면 역시 사진집에 실린 몇 안 되는 해외 사진 중 하나다.
2010년 10월이었다. 싱가포르 마리나 베라지의 옥상에 올랐을 때 실로 많은 사람들이 연날리기를 하고 있었고 나는 유유히 산책을 하며 이 장관을 구경하며 사진을 담았다. 실제로 하늘엔 수많은 연이 떠 있었고, 오히려 프레임 바깥으로 많은 연을 밀어내고 간결하게 찍는 게 힘들었다.
연날리기는 놀이이자 의식이었고 그 이전에 군사적 전략이기도 했으며 하늘을 날고 싶었던 사람들의 욕망이기도 했다. 내 어릴 적 날렸던 수많은 연들은 다 어디론가 날아가 다른 세계의 낯선 허공을 부유하며 유년의 비를 뿌리고 동심의 눈을 내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의 염원이 달을 띄울 수 없을 때 연을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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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진도의 새벽.
2013년 7월. 회사 사람들과 함께 갔던 비진도에서 새벽에 일찍 잠을 깬 나는 혼자 선유봉에 올랐다 내려와서 한참을 산책하며 섬의 시간을 즐겼다.

두물머리에서 상춘원을 지나 산책을 하다가 벤치를 만났다. 별생각 없이 셔터를 누르는데 한 사람이 벤치에 와서 앉았고, 잠시 후에 그 사람이 떠나고, 다시 두 사람이 와서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떠나고 벤치를 그냥 지나치는 사람과, 앉았다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한참을 상념에 젖어있다가 빈 벤치를 담았다. 양옆의 나무 두 그루도 앙상하고도 부러진 내 상념 속으로 들어왔다.

가수 홍성지.
작고 꽉 찬 공연이었다. 아무런 장비 없이 하이매틱 7s2에 티맥스400으로 어두운 공연사진을 찍는 건 무모한 짓이었는지도 모른다. 역시나 노출이 어긋나 얼굴이 다 날아가 버렸으나 이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노래에 심취한 그녀의 얼굴에선 빛이 나는 듯하다. 이젠 결혼을 하고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가 노래할 다음 인생은 어떤 모습의 빛을 발할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 사진과 같이 있는 바로 앞 사진의 주인공은 밴드 두번째달의 전 멤버 박혜리다. 둘 다 정원영밴드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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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흔한 대상을 찍는다는 것. 무척 흔한 대상 너머로 기울어져가는 햇빛이 들어온다는 것, 무척이나 사소한 내가 흔한 사물과 겹쳐질 때, 그 순간의 빛이 내 생과 겹쳐질 때, 이 흔하고도 집중적이며 혼란스러운, 인생의 찰나.
민들레 홀씨의 존재감은 이럴 때 빛난다. 그는 확정되지 않은 수많은 인연을 품고 둥글게 말려 있다. 작은 바람에도 곧 흩어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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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리움이다.
누구나 이곳에선 이 장면을 찍을 것 같은 그런 장면을 찍었다. 당신이 나와 비슷한 장면을 찍었더라도, 이 장소가 또 무수히 많은 누군가에게 찍히더라도, 우리의 시선은 각자의 마음을 향하고 있다. 각자 자신만의 빛과 모습으로 상이 맺혀진다.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또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길 위의 인생, 길 위의 인생, 길 위의 인생,
인간은 전이동물
인간은 반추동물
인간은 관성동물
인간은 직관동물

표지를 장식한 사진이다.
2013년 12월. 중국 헤이룽장성 헤이허 시에서 치치하얼 시로 가는 기차 안에서 찍은 장면이다. 바깥 기온은 영하 20~25도를 유지하고 있었고, 오며 가며 꼬박 이틀을 달렸는데 침대칸은 불편했고, 난방기가 고장났는지 첫날밤은 너무 추워서 잠을 못 잤고, 이튿날인 이 날은 너무 더워서 잠을 못 잤다. 하릴없이 기차 안을 돌아다니며 창밖을 보고 또 보았는데 밖은 눈이 내렸고 끝없는 지평선이 재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기이할 정도로 고요하고 외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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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대구미술관의 설치미술작품 앞에서.
한 사람이 지나가고, 두 사람이 지나가고, 세 사람이 지나가고, 이윽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디선가 쏟아져 나왔다.
우린 모두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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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연구 때문에 출장을 간 곳에서 일을 마치고 회식을 하는데 혼자 빠져나와서 개인적으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현택훈 시인과 김신숙 시인이다.
그렇다. 이국적인 이곳은 제주도. 우린 이날 하룻밤 사이에 올레길을 구석구석 한참 달렸고, 강정마을에 가서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만났고, 약천사에 가서 하룻밤을 묵었다.
강정마을에 도착했을 때 집회 장소가 어딘지 몰라 작은 슈퍼에 들러 길을 물었더니 거기 계시던 아주머니 왈 "찬성파여, 반대파여? 찬성은 이쪽이구 반대는 저쪽이여."
찬성집회와 반대집회가 같은 날 열렸던 모양이다. 이 상황이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았다.

2005년 11월 어느 날. 나는 부산에 있었고 산책이 과해서 태종대에서 해운대까지 걸었다. 그러고는 갑자기 코끼리가 보고 싶어서 부산 어린이대공원에 갔는데 코끼리 동상은 있었으나 코끼리는 없었다. 대신 멋진 뿔을 가진 산양 한 마리가 저 산허리 어디쯤을 처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섬의 70%가 동백으로 덮인 지심도의 2월. 동백꽃을 보러 갔다.
찍을 땐 생각지 못했으나 유진 스미스의 작품인 The Walk to Paradise Garden과 비슷한 분위기가 되었다. 사진이 가진 가치와 무게감은 비견할 바 아닐지라도, The walk to 동백 garden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누군가의 사진과 유사한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이 그리 내세울 일은 아닐 테지만 그게 유진 스미스라면 말이 좀 달라져도 되지 않을까.
앞서 걸어간 저 두 사람은 친구의 어머니와 동생이다. 혼자 자취하던 시절에 자주 오라고 하셔서 밥을 차려주셨는데 나에겐 정말 가뭄의 단비 같았다. 감사한 마음을 항상 갖고 있습니다. 어머님 건강하세요.

이 사진엔 기형도 시인의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떠올리며 '기억하지 않을 만한 지나침'이라는 제목을 붙였다.(시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사진이기도 하고.)
허나 제목과는 반대로 이미 사진으로 남았으니 기억되어버린 지나침이다.
누군가는 시로 기억하고, 누군가는 사진으로 기억한다. 누군가는 음악으로 기억하고, 또 누군가는 몸짓으로 기억하겠지. 기억의 방식은 다 다를지라도 기억하려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동일한 무게의 기저로 존재할 것이다. 이것이 추후에 어떤 삶의 향기를 어디까지 풍길 것인가를 늘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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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도 중국이다.
앞서 소개한 표지사진은 헤이허에서 치치하얼로 내려가는 도중에 찍은 것이고, 이 사진은 바로 전날 치치하얼에서 헤이어로 올라가는 도중에 찍었다. 침대칸이 있는 기차의 복도와 바깥의 나무가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어우러진다. 이런 분위기의 사진이 될 줄 은 몰랐다. 현상 후 인화하거나 스캔을 해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필름의 불편한 매력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질적이지 않고 묘하게 어우러지지 않은 사진이 나왔어도 좋을 것이다. 딱딱하거나 부드럽거나 빨갛거나 움푹 들어가도 좋을 것이다. 희지 않고 노랗거나 끝을 알 수 없거나 못다한 안부를 전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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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이호테우 해변의 8월.
계란후라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햇볕이 뜨거웠던 여름날의 오후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트로이의 목마처럼 생긴 저 등대에 가까이 갔다. 역광이었고, 때문에 피사체는 어두웠고, 나는 이 역광이 마음에 들었다. 카메라를 들자 더운 바람이 렌즈를 지나 뺨을 스쳤다.

2014년 12월. 핀크스 비오토피아에 있는 이타미 준의 물, 바람, 돌 미술관 중 바람미술관이다. 나무로 된 건물은 멀리서부터 묵묵한 존재감을 드러내었고 우리보다 앞서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잔뜩 기대를 안고 들어간 내부는 텅 비어 있었고, 아니 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나는 너무나 벅찬 마음으로 건축예술의 정수를 만끽했다.
사진으로 빛과 소리와 향기를 잡아내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들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머물 장소를 제공하는 것. 두 발 딛고 선 땅과 시선이 멈춘 공간과의 거리를 명확하게 인지하는 것.

2009년 3월, 막 봄으로 접어든 청송 주산지.
나는 물 아래 땅을 움켜쥐고 있을 왕버들의 뿌리를 찍고 싶었다.
나무는 열매와 꽃으로 자신을 드러내지만 그것은 지구의 안쪽에 있는 뿌리가 바깥쪽으로 털어내는 존재의 단초일 뿐. 의식의 바다가 마르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육지는 피하층의 뿌리로 땀을 모조리 흡수하는 것이다. 셔터를 누른 후 두 발 딛고 선 땅을 무심코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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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화본역 급수탑 내부에 들어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더니 커다란 역사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 급수탑은 1930년대 일제시대에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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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의 제주도. 어째 제주도엔 주로 한여름에만 가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 땐 가족여행이었다. 덥고 습하고 덥고 습했으나 우리는 좋았고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다. 해수욕을 즐기러 서귀포에서 함덕까지 갔는데 지갑을 안 갖고 갔다. 주머니에 만 원짜리가 딱 한 장 있었는데 그걸로 알래스카 인 제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6,000천 원이 남았다. 거스름돈을 주머니에 넣고 반바지 차림 그대로 바다에 들어갔다 나오니 돈은 파도에 쓸려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산토리니 해변 어딘가의 가난한 청년이 주워서 환전했을지도 모를 일. 각설하고, 그때 만난 말이다. 어찌나 얌전한지 꼼짝도 않고 저렇게 한참을 서 있었고, 우리 가족이 다 한 번씩 쓰다듬어줬다. 착한 말, 얌전한 말, 다정한 말. 다정한 말에는 꽃이 핀다고 하니, 저 유려한 등에서 꽃대가 올라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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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다. 선실 내부에 웅크리는 사람들과 밖을 향한 사람들. 바깥에 머물던 나는 객실 안으로 들어와서 밖을 향한 사람들을 찍기 시작했다. 2016년 7월. 우도에서 성산포로 돌아오는 배에서.

등대는 이정표이자 안내자이기 이전에 기다림 그 자체다. 뭍의 끝을 잡고 바다를 향해 한 획을 그었더니 등대가 되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기다리기도 하고, 때론 안내자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을 때조차 빛의 신호를 바다로 내보낸다. 섬이 그 뭉툭한 각을 세워 바다를 그릴 때, 등대는 하나의 지표이자 기호가 된다. 폭풍우 치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가장 멀리까지 빛의 신호를 보내는 항로의 조력자. 인생의 항로에서 등대 같은 사진을 마주할 수 있기를 늘 바란다.